::: 힘찬 도약의 희망, 재단법인 효봉장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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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06 20:17
보고 싶은 아들 보아라 (이사장님 내외분 실버넷 뉴스 공모전 동상 수상 작품)
 글쓴이 : 효봉장학회
조회 : 2,435  
   http://cafe.naver.com/silvercontes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 [776]

<<링크된 주소로 접속하시면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효봉인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보고 싶은 아들아 보아라

내 가슴 속에 묻혀있는 막내아들 조성열 박사!

너를 하늘나라로 보내던 날은 왜 그렇게도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는지? 영구차에 너를 실고 고려대 부속병원 영안실로 가는 동안 나는 몰래 홑이불을 젖히고 네 뺨을 비벼대며 통곡을 했지. 점점 차가움을 느끼며 산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온도 차이로 판가름이 나는 것을 느꼈다. 팔 다리 눈코는 다 있는데 차가워지고 굳어져 가는 네 몸에 내 따스함으로 녹여 줄 수는 없을까 하고 홑이불 속에 같이 누워도 보았다. 어느 새 차는 병원에 다다랐고 네가 냉동실에 들어 갈 때 나는 너와 내가 바뀌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닫히면서 그때 나는 수의壽衣 생각이 났다.

 

-수의를 입혀야지요?

 

“아드님은 이제 우리 병원 물건이지 어머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할테니 저리 비키세요!”

 

하면서 냉정히 떠밀더라.

 

아니, 내 자식이 아니라니, 그리고 물건이라니? 너는 왜 시신을 기증하라고 했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단다. 그러나 현실은 장례식장. 손님을 초대해야 하는데 20 평짜리 구석진 방과 가장 넓은 99평 방 2 개뿐이었다. 네 아버지는 ‘장가도 못 가고 갔는데 작은 방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너의 성격을 안다. 자신의 생활은 짜고 아끼지만 남한테 베풀 때는 크고 화려하게 한다는 것을.

 

“여보! 성열이 성격은 작고 구석진 방 싫어해요. 큰 방으로 합시다.”

 

작은 매형은 ‘박사가 죽었으니까 신문에 내자’고 하지 않았겠니? 그러나 아빠 엄마는 친구들이 알까봐 싫다고 했다. 그러나 까만 양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밀려오는데 그 방이 꽉 차서 열 살도 채 안된 너의 쌍동이 조카들이 신발을 정리하기 바빴단다. 고등학교 때 퇴학 맞은 친구, 대학 못 가고 놀던 친구, 박사, 판사, 교수 다양한 친구들이 경상도 전라도 부산 등지에서 몰려오는데 나는 내 아들의 인간성의 폭 넓음을 짐작도 못 했으니 이게 엄마인가 싶었다.

 

부모는 자식이 커 가는 것을 모르고 더군다나 6년이란 긴 세월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고등 학교 시절 공부 안 하고 놀기만 좋아한다고 야단쳤든 그 모습 그대로만 내 가슴 속에 새겨져 있었는데.... 너의 속마음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르고 외국 가서 우리 아들 장학금 받고 생활비 150불弗씩 받아 돈 한 푼 안들이고 공부한다고 자랑만 했다. 인격적으로 이렇게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아들을 미쳐 몰라보았다니.

 

엄마는 네 장례 때 너의 사회적인 위치, 인간성, 대인관계를 알아보았다. ‘연구소 부원장(Washington State Universlty 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님)이 있다면 장차 유능한 농림부 장관 감인데 이렇게 일찍 가서 우리도 아깝고 아쉬운데 어머님이야 오죽 하시겠습니까?’ 너를 가리켜 ‘카리스마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술좌석에서 유머로 좌중을 사로잡던 사람인데....’

 

외국 교수(프랑스 영국 미국)가 오면 네가 호텔로 가서 접대하고 연구자료 가지고 토론하고 오지 않았니? 어린애로만 보다가 갑자기 박사 되어 연구소로 온다할 때 면접 보러 오는 비행기 값이 연구소에서 아버지 통장으로 들어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

 

미국, 영국 박사 10명 중 2명 뽑는데 합격된 것도 고마운데 비행기 값까지 주다니, 엄마도 갑자기 신분이 상승된 기분이라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었는데 너의 죽음으로 인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너의 인격을 인정하게 되었으니. 아들아! 정말 훌륭하다! 네가 떠나기 3주 전에 암 병동 10층 특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엄마! 아파트 안에 둘러싸여 있는 저 저택들, 정원이 넓디넓고 나무가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어? 저런 집을 짓고 자식새끼 낳아 잘 살아 보려고 그랬는데 일주일이 고비라 하지? 만약 내가 보고 싶거든 원용이 불러다 보고 장가갈 때 나 장가가는 것처럼 생각해 주어. 나 같이 불치병 (임파암) 걸린 사람을 위해 연구에 써 달라고 내 시신도 고려대 병원에 기증해!

 

몇 달 전 안과 (안암병원 안과)에 갔을 때 후배 의사 가운이 꾀죄죄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어. 엄마! 그리고 방학 때 오면

 

-너는 교수 아니면 공무원이 될 텐데, 교수나 공무원이 “돈”에 탐을 내면 추하고 인간 이하로 보이니까 아파트 하나 사 주고 고향에 있는 땅 (너 낳은 해에 1,000원 주고 산 땅) 너에게 줄게-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만약 더 살지 못 하고 죽으면 나에게 주려던 그 몫으로 공부 잘 하고 놀 줄도 알고, 돈이 없는 놈들한테 장학금으로 내 놓아!“

 

엄마는 ‘외삼촌을 본다. 할머니가 오냐오냐 키워 재산 물려주니까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자식새끼 재산 물려 줄 것 아니다, 돈 버리느라고 고생 얼마나 했는지 아느냐’고 큰외삼촌 원망 열두 번도 더 했잖아”

 

그래 엄마는 교육에 정도는 없지만 과잉보호가 제일 못 쓴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 호랑이가 새끼 낳아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올라오는 강한 놈만 자식으로 품에 안는다는 셈 치고 너와 형도 넓고 먼 미국 땅에 내던지고 너는 공부 잘 해 장학금으로 생활비까지 받아 공부했고, 형은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공부를 했잖니?

 

미국에 누님 있어 휴가차 다녀왔다는 모르는 분이 전화를 걸어왔더라. ‘어쩜 아드님들을 그렇게 잘 두셨느냐고, 잘 생기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 하지만 아르바이트 (누님집 수퍼 경영)학생이 큰 아드님이고 작은 아드님이 박사공부를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한다면서요? 교수님이 세미나로 다른 주 대학에 갈 때는 꼭 데리고 간다지요?, 그 분이 세계적인 교수라는데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학생이 둘째아드님이시라니 훌륭한 어머니 상이라도 받아야겠어요’ 라고 하더라. 그 전화 받고 뛸 듯이 기뻤지만 ‘고맙습니다! 그러나 잘 풀려야죠.’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자만심이 꽉 차 있었다.

 

나는 배워서 외할머니, 친할머니가 오냐오냐 키운 자식들처럼 자립심이 없고 사치만 좋아하는 자식으로 안 키웠다는 자부심 말이다. 그런데 자식을 죽인, 아니 잡아먹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모인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고백성사(천주교에서 자기 죄를 고하고 사함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왜 내가 교리 선생으로 20여 년을 보람있는 삶으로 여겼었는데? 고상을 내던지고 성경책을 눈에서 멀리하고 싶다고 고했더니‘ 왜 하느님을 원망하느냐. 보호자가 누구냐? 장가를 갔느냐? 여기는 누가 있느냐?’ 해서 형하고 형수가 있다 했더니 형하고 형수 어머니가 보호를 잘못해서 암병이 걸렸지 왜 하느님 탓을 하느냐고 혼났다. 형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짓고 그 이튿날 바자회하는 날은 여러 사람 있는 곳을 피해 마당 뒤쪽에서 크게 울고 있더라. 엄마가 저녁에 봉사자들끼리 무슨 일이 있기에 울었느냐 하니까 ‘무슨 일은 요. 성열이 생각나서 울었죠.’하더라.

 

엄마 아빠 형 마음속에는 그렇게 네가 살고 있다.

 

판단력 정확하고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여 엄마는 아버지한테도 못 하는 말 너한테는 했지? 그러나 이게 웬일이냐. 너는 가고 추억으로 간직되었으니....장학 사업으로 아빠 엄마는 인생을 건다. 너를 영원히 살리기 위하여. 2011년 8월24일 네가 다닌 고려대학교에서 제7회 장학금 수여식을 했다.

 

장학금 받은 학생들이 77명이고 그 중에서 박사가 3명, 석사가 4명이 나왔더라. 1회 때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답사에서 자기가 장학금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암으로 3년 고생) 에게 알렸더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왜 하필 나냐?) 원망도 없이 그런 유언을 하여 너까지 이런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돈 있어 장학금 주는 장학금 하고는 같은 돈이라도 질이 틀리니 네가 잘 되어 꼭 갚으라’ 말씀하시고 2시간 후에 숨을 거두셨다고 했는데 그 학생은 지금공군사관학교 전임교수로 발령 받았다.

 

어떤 학생들은 수여식날‘ 다른 장학금은 내가 공부 잘 해 받는가보다’ 라는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는데 효봉장학금은 선배님의 깊은 뜻- 후배를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가슴이 뭉클하다고 하더라. 성열아!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너는 살아있다!

 

고려대학이 존속하는 한 너 역시 살아 숨 쉬고 있는 거란다. 성열이 너 때문에 아빠 엄마도 고려대학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아빠 엄마는 우리 효봉장학회를 잘 키워서 고려대 식품자원학과 학생들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날을 위해 하늘에서 너도 기도를 많이 하거라!

 

2011년 10월2일

 

우이동에서 엄마,아빠 보냄